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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묵직한 감동 : 레 미제라블

지난 4월 15일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재로 피해를 입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그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다. 그는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를 1831년에 저술했다. 이번에 읽은 ‘레 미제라블’은 5부작으로 약 2,500쪽 분량의 대작이다. 위고는 이 대작을 1862년에 출간했다.

일반적으로 한 권으로 출간된 ‘레 미제라블’ 또는 ‘장발장’은 일본에서 원전을 발췌 요약한 것을 우리말로 중역한 것으로 주로 장발장과 자베르 경감, 코제트와 마리우스, 시민혁명을 이끈 청년들, 테나르디에 등의 악역들을 중심으로 한 흥미진진한 사건 전개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러나 5권으로 된 완역본을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 간의 사랑과 증오의 시나리오는 빅토르 위고가 당시 프랑스 사회의 정치, 사회, 종교, 경제, 사법 행정 등에 대한 비평과 분석을 위한 양념 정도로 끼어 놓았다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19년간 옥살이를 하고 겨우 가석방된 장발장을 모든 이들이 경계하고 음식과 숙소를 제공하지 않지만 오직 연로한 미리엘 주교만이 그를 포용하고, 큰 은혜를 베풀어 그가 진정으로 참회하도록 이끈다. 축약본에서는 그저 1~2쪽 정도의 분량으로 은촛대를 훔친 장발장에게 은혜를 베푸는 인자한 노인으로 묘사되지만 원전은 완전 스케일이 다르다.

약 100여쪽에 달하는 분량으로 당시 프랑스 사회의 사회, 정치적 갈등과 종교, 계층 간의 문제를 서술한다. 기득권을 갖고 있고 충분히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종교적 순결성을 유지하면서 검소한 생활을 하는 미리엘은 극히 보기 드문 존재이다. 위고는 이렇게 명석한 두뇌로 전도유망한 철학자요 신학자였던 미리엘 주교의 인생과 사상을 통해서 당시 프랑스 사회가 왕당파와 공화파로 나누어져 대립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또 자베르 경감에게 쫓기던 장발장과 코제트가 극적으로 파리 시내에 있는 수녀원으로 숨어들어간 사건은 어떠한가? 사실 장발장은 그곳이 수녀원인줄도 몰랐다. 철저한 금남의 공간에 장년의 장발장과 그의 보호 아래 있는 어린 코제트가 숨어 들었다. 위고는 이들이 이곳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복선을 미리 깔아 놓았다. 예전에 장발장이 시장으로 있을 때 마차에 깔린 노인을 구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 포쉘방이란 이가 수녀원의 정원사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장발장이 숨어든 수녀원에 대해 작가 위고가 설명하는 내용에 있다. 위고는 수녀원이란 공간에 대해 특유의 자세한 설명과 함께 수녀원 제도가 왜 생겼는지, 어떻게 발전해 왔고, 현재는 어떻게 쇠락해 가고 있는지를 지루할 정도로 설명을 한다. 장발장이 막다른 골목길로 쫓기다가 수녀원의 높은 벽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위고는 방대한 이 소설의 전개를 에피소드 사이마다 자신의 사상과 소신, 그리고 해박한 지식을 풀어 놓는데 사용하고 있다.

마리우스가 참여한 1832년 6월 파리 시민 봉기를 다룬 제4부에서는 그의 친구들이 카페와 술집에 모여 토론하는 내용이 상세히 서술된다. 프랑스는 1789년 대혁명 이후 황제가 물러나고 공화제가 들어섰다가 나폴레옹 시대를 맞아 유럽의 강대국으로 자리하게 된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 프랑스는 다시 전제 왕정으로 회귀했고, 공화제를 주장하는 사람들과의 갈등이 심화된다. 소설 레미제라블은 이러한 시대 배경을 녹여내고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장발장이 빵 몇 개를 훔친 죄로 징역 5년형을 선고 받은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나중에야 그 사유를 알 수 있었다. 당시 유럽은 증기기관이 발명되기 전이었는데 군함이나 상선들은 바람을 이용한 범선이었으나 여전히 노를 젓는 사람이 필요했다. 이에 하층민들이 경범죄를 저질렀을 때도 징역형을 선고하여 그 노동력을 확보했던 것이다. 물론 장발장은 누이와 조카들의 생사가 궁금하여 수차 탈옥을 감행했다가 형기가 19년으로 늘어나기까지 했다. 위고는 당시 죄수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환경과 대우를 받았는지 적나라하게 서술한다.

장발장이 중상을 입은 마리우스를 부축하여 시민군의 바리게이트를 탈출하던 장면은 어떠한가. 정부군에 발각되면 바로 총살당할 위기에서 장발장은 하수도를 통해 탈출을 한다. 축약본에서는 하수도를 통해 도망하다가 쇠문이 닫혀 있었는데 악당 테나르디에가 돈을 받고 열어 주었다 정도로 한 두 쪽 분량으로 소개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위고는 여기서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파리 시내 지하에 방대하게 건설된 하수도의 건설 역사는 물론 경제적 가치, 하수도 건설로 인한 침수 방지, 위생 보건 상의 유익뿐만 아니라 범죄자들의 은닉 장소로 활용된다는 장광설을 펼쳐 낸다.

한편으로 위고는 등장인물을 통해서 당시 프랑스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보여준다. 장발장은 말할 것 없고 코제트의 친모 팡틴느의 비극을 통해서도 당시 프랑스 사회의 경제 상황과 노동 현실을 고발한다. 그 뿐이겠는가? 열악하기 짝이 없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대우를 불편할 정도로 표현해 낸다. 소설을 읽다보면 장발장을 만나 인생 역전을 하여 경제적으로 유복한 생활을 하는 코제트가 얄밉게 생각될 정도로 서민층과 빈곤층의 여인과 딸들은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폴레옹 몰락 이후 오랜 전쟁에 지쳐 평화를 갈망하던 프랑스인들은 왕정을 받아들인다. 또한 당시 영국을 중심으로 한 산업혁명의 흐름은 프랑스에도 영향을 미친다. 장발장이 몽레이유라는 소도시에서 공장을 세워 거부가 된 것도 산업혁명의 열매였다. 그러나 하지만 성장의 열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돌아가지 않았다. 급격한 도시화는 위생상의 문제를 불러 왔고 농부에서 공장 노동자가 된 이들은 빈민가를 형성했다.

도시 인구는 갑자기 늘어났지만 주택, 수도 등 기반시설은 열악했다. 전염병과 낮은 임금으로 빈민과 부랑아가 늘었다. 남자들은 술에 빠지고, 여인들은 몸을 팔았다. 코제트의 친모 팡틴느가 그 상징인물이다. 그리고 비극적인 상황 중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부랑아 가브로슈와 그의 친부인 악당 테나르디에 일당을 통해서도 프랑스 사회의 밑바닥을 보여준다.

빅토르 위고는 이런 사회 문제를 선량한 미리엘 주교, 회심한 장발장, 엄격한 법 집행을 평생의 철칙으로 삼은 자베르 경감, 앙졸라 등의 청년 혁명가 등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음을 5부작의 방대한 서사 중에서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펜이라는 도구로 당시의 적폐와 사회병리적 현상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 우리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을 보면 역시 고전 명작을 읽으라고 하는 충고가 새롭기만 하다.

[전파보호과 행정주사 정영기]